팝아트는 소비사회와 대중문화의 이미저리와 기술들을 활용했던 20세기 예술운동이다. 1950년대 후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고, 1960년대와 1970년대가 전성기이다. 팝아트는 형상을 주로 하는 이미저리와 캠벨 수프 캔, 4단 만화, 광고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늘 보는 대상들을 재생한다. 이 운동은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을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이라고 구분을 짓던 경계선을 허물었다.
* 무언가 소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갖게 된다. 나는 이 명제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코카콜라 병을 예술의 세계로 끌어들이면서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선을 허물고 싶었다. 또한 특정 계층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예술의 세계를 열어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 나라 미국의 위대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같은 것을 소비하는 전통을 세웠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미국 대통령도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 뿐, 아무리 큰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모퉁이에서 건달이 빨아대고 있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유통되는 콜라는 모두 똑같다."
*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실크스크린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워홀은 예술을 일반 대중의 삶속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은 예술이 특별한 사람들만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깨뜨렸다.
"그림은 너무 딱딱하다. 난 기계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계는 문제가 적기 때문이다. 때로 나는 단순한 기계가 되고 싶은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 워홀은 다른 화가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일상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인 것을 소재로 택함으로써 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 수프 통조림 그림을 본 사람들은 워홀에게 "왜 슈퍼마켓에 가면 볼 수 있는 수프 통조림을 그립니까?" 또는 "대량생산이나 소비주의 혹은 광고에 대한 반발입니까?"라고 물었다. 워홀은 그 질문들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혼자 이렇게 속삭였다.
'내 그림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프 통조림을 그린 것입니다.'
* 워홀의 모든 예술 행위는 항상 새로운 것의 창조였다. 기존의 생각들을 깨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이것과 저것의 구분도 없애고, 예술이라는 영역 자체를 확대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앤디 워홀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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