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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8, 2012

안부인사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요? 당신이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죠. 길거리에서 누군가 만나 이렇게 물어요. “어떻게 지내요?” 그들이 대답할 겁니다. “잘 지내요. 어떻게 지내요?” 그럼 당신이 말하겠죠. “저도 잘 지내요. 또 봐요.” 보통 그런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까요. 만약 진실을 이야기해주면 사람들은 굉장히 당황할 겁니다. 누군가 “어떻게 지내요?” 물었는데, 당신이 “끔찍해요. 치질에 걸렸고요, 피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누군지도 모르는 할머니와 지하 방에서 살고 있고, 정말 희귀한 눈병에 걸렸어요. 중국 명나라 시대 물건들을 수집해왔는데 어제 하늘에서 떨어진 돼지 때문에 모두 부서졌어요. 모든 게 거지같고 전 죽고만 싶다고요.”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뭐라 답하겠습니까. 이러겠죠, “어, 알았어요, 또 봐요.” _Dylan Moran, Live at Jongleurs

Saturday, February 25, 2012

4월 30일
저 서운산의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이런 날
무슨 미움이겠는가

고은

Wednesday, August 17, 2011

생각의 일요일들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면요. 언젠가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어요.
- 나는요.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침묵을 못 견뎌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돌아오면 늘 후회해요.
선배가 대답해주었지요.
- 그건 니가 수줍음의 수줍은 태도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냥 수줍은 성격 그대로 살아.
어? 난 왜 수줍음을 극복하려고 했지?
(뭐죠? 이 돌 날아오는 소리는?)
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보여지는 나'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 수줍음도 있지만 그에 길항하는 대담함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거든요.

Sunday, June 12, 2011

문제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하지만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살다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방법으로 초, 중,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감수성이 가장 민감한 시기로 그 때 좋아했던 것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다.

Saturday, January 8, 2011

Tuesday, January 4, 2011

고슴도치의 우아함

쉬운 길은 항상 있었다. 내가 거기에 발을 들인 적은 결코 없지만. 나는 자식도 없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으며 신도 믿지 않았다. 즉 삶이 인간에게 더 '수월'하게끔 다져놓은 이 모든 오솔길을 걸은 적이 없다. 자식은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미루게 도와주며, 그다음에는 손자 손녀가 그 역할을 이어받는다. 텔레비젼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우리 존재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계획하고 기분을 전환하게 하는 소모적인 도구다. 그것은 우리의 눈을 농락해 생의 걸작을 남기지 못하게 정신을 날려버린다. 마침내 신은 포유류로서 느끼는 우리의 공포와 언젠가 이 즐거움이 끝나리라는 참을 수 없는 전망을 진정시킨다. 이처럼 나는 부조리에 대한 인식을 아둔하게 만드는 미래도 후손도 허구도 없이, 종언에 대한 확신과 공허함에 대한 예상 속에서 편리한 길을 선택하지 않아왔다.

깊은 사색 5 - 모든 이의 삶 군복무

콜롱브의 문제는 뭘까? 그건 나도 모른다. 모든 사람을 깔아뭉개려는 데 너무 힘을 쓴 나머지 말 그대로 군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군대에서처럼 모든 것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광을 내고 청소를 하는지도. 군인이 질서와 청결에 강박적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전투의 무질서나 전쟁의 더러움,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남는 온갖 시체에 대처하려면 그런 면이 필요하다. 어쩌면 콜롱브는 그 규범을 드러내주는 극단적인 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는 병역을 치르듯 인생에 임하는 것이 아닐까? 할 수 있는 일이나 하며 제대나 전투를 기다리는 삶. 누구는 방을 닦고, 누구는 게으름을 피우고 카드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누구는 괴상한 짓을 하고 음모를 꾸민다. 장교들은 명령하고 졸병들은 복종하지만 아무도 이 비공개 코미디에 속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이면 장교든 졸병이든, 담배나 화장지를 암거래하는 꾀바른 녀석이든 바보든 모두 죽으러 가야하니까.
여기서 나는 기본적인 정신분석학적 가설을 하나 제시한다. 콜롱브는 내면이 혼란 자체로, 텅 빈 동시에 혼잡하기 때문에 자기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자신에게 질서를 부여하려 애쓴다는 가설.

사람들에겐 자신들의 조그마한 정신적 습관의 틀을 깨부술 믿음이 없다

르네

위험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

위험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을 아는가?
싸우거나(fignt) 도망치거나(flee) 얼어붙거나(freeze)

Thursday, November 25, 2010

공항에서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

 객관적으로 일하기 좋은 곳이 실제로도 좋은 곳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조용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서재는 그 흠 하나 없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실패에 대한 공포를 압도적인 수준으로 높이곤 한다. 독창적인 사고는 수줍은 동물과 비슷하다. 그런 동물이 굴에서 달려나오게 하려면 때로는 다른 방향, 혼잡한 거리나 터미널 같은 곳을 보고 있어야 한다.

 나는 공항에서 외로운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 사람답게 지나치게 자세하게, 독자가 오랫동안 느껴왔지만 이제까지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감정들을 따뜻한 목소리로 표현한 책, 사회는 대체로 이야기되지 않는 상태로 덮어두는 쪽을 좋아하는 은밀하면서도 일상적인 것들을 전달해주는 책, 어떻게든 외롭고 낯선 느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제임스 휘슬러가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카버가 글을 쓰기 전에는 미국 서부의 고립된 작은 도시들의 적막과 슬픔이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난 적이 없지 않았을까.

 "이 세상의 노고와 소란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부, 권력, 탁월한 위치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그렇게 묻고 스스로 대답을 했다. "공감하고, 만족하며, 찬동하면서 관찰하고,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이다." 콩코드 룸을 만든 사람들은 이런 야망에 감동적일 정도로 정확하게 대응했다.

 우리 사회가 풍족한 것은 대체로 가장 부유한 시민들이 부자들은 이럴 것이다 하는 대중의 통념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을 하느라 바빠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해도, 우리가 애초에 여행을 떠난 것에 불만이 있어 보기도 싫다는 말을 했다고 해도, 지난 6월에 우리 곁을 떠났거나 12년 반 전에 죽었다고 해도, 그래도 그들이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냥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우리가 작은 아이였을 때 누군가 가끔이라도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절대 여기까지 올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몸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사회 생활에서는 힘과 강인함을 투사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지독하게 연약하고 위태로운 피조물들이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을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또 그들 역시 우리를 무시하지만, 늘 우리의 행복의 가능성을 볼모로 잡고 있는 소수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냄새만으로도 인식할 수 있으며, 그들 없이 사느니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할 것이다.

 주차장의 가차 없는 형광등 불빛 밑에서 시민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는 애초에 여행을 떠났던 이유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말려들곤 하던 천박하고 성난 분위기에 제대로 저항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 아니었던가.
 우리는 우리가 찾아갔던 여행지들에 부탁할 수도 있다. "내가 더 관대해지고, 덜 두려워하고, 늘 호기심을 느끼도록 도와줘. 나와 내 혼란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해줘. 나와 내 수치감 사이에 대서양 전체를 넣어줘."

 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사무실로 돌아갈 것이고, 거기에서 하나의 대륙을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할 것이다. 배우자나 자식과 다시 말다툼을 시작할 것이다. 영국의 풍경을 보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매미를 잊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보낸 마지막 날 함께 품었던 희망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두브로브니크와 프라하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해변과 중세의 거리가 주는 힘을 다시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르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항구를 굽어보는 방 두 개짜리 숙소, 시칠리아의 순교자 성 아가타의 유해를 자랑하는 언덕 꼭대기의 교회, 무료 저녁 뷔페가 제공되는 야자나무들 속의 방갈로. 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Monday, November 15, 2010

Hidden Paris by Ami Sioux

50명의 파리거주자들은 그들만의 패이보릿장소로 갈 수 있는 지도를 직접 손으로 그렸다. 그리고 Ami Sioux가 그 장소를 찍었다. 이런거 넘 재밌다. 나도 Hidden Seoul 해보까

Friday, October 8, 2010

헛되도다.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 Et omnia vanitas

시간의 덧없음, 인생의 무상함은 서양의 화가들이 즐겨 그린 단골 메뉴였다. 이런 내용을 담은 그림들을 바니타스(Vanitas)라고 하는데 바니타스란 라틴어로 '헛되도다'라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 한시성을 의미한다.
네덜란드 화가 다비트 바일리도 이런 바니타스 정물화에 재능을 발휘했던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무명의 화가였지만 <바니타스 상징이 있는 자화상>이라는 작품 한 점으로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행운아다. 그림을 보면 왼쪽에 화가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의 테이블 위에는 불 꺼진 촛대, 두개골, 모래시계, 깨지기 쉬운 유리잔, 사라진 고대 문명의 유물인 석상, 잠시 후면 시들어버릴 꽃 등 온통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가즉하다. 책상 위에 있는 세 개의 비눗방울 역시 잠시 후면 터져버려 사라지고 말 한시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인생무상의 메시지를 가장 강한 톤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은 그림 속의 젊은 화가가 들고 있는 자신의 노년을 그린 초상화이다. 이 바니타스 초상이 그려진 것이 1651년이니까 화가의 나이 67세 때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그렸을 때의 화가의 실제 모습은 '그림 속'의 젊은이가 아니라 '그림 속의 그림' 속에 있는 늙은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화가는 자신의 노련과 젊은 시절의 자화상을 대비시킴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웅변하려 했다. 그러한 메시지는 오른쪽 책에 끼워진 쪽지에 더더욱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헛되도다.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 Et omnia vanitas."

Tuesday, October 5, 2010

'상추 이파리처럼 홀가분한'이라는 표현의 뜻

함께 자란 옆 상추와 갑자기 헤어진 상추의 느낌이 바로 이렇게 야릇한 느낌일 것 같았다. 함께 얘기는커녕 아무런 의사소통도 해본 적 없고 그 안에 또 다른 수많은 이파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겉 이파리밖에 본 적 없는 옆 상추와 헤어졌다고 해서 고통스러워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비논리적인 일일 것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왜 그랬니, 페드로?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받아들여서 일이 더 난처하게 되었다. 네가 티타한테 맹세했던 사랑은 어디로 간 거냐? 그 맹세를 지키지 않을 셈이야?"
"물론 지킬 겁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는 절대 결혼할 수 없고, 그녀 가까이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녀의 언니와 결혼하는 길밖에 없다면 아버지 역시 저와 똑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Saturday, September 25, 2010

여행, 마코토

"자정이네"
"오빠, 제발 부탁이야. 이제 서울로 돌아가자. 바다도 봤잖아."
"중요한 건 바다가 아니야."
"그럼 뭐야?"
"내 인생."
"오빠 인생이 어디가 어떻다는 거야?"
"내 인생이 TV드라마였으면 벌써 시청자들의 항의가 인터넷 게시판에 빗발쳤을 거야. 지루한 연장 방영을 즉각 중단하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 나는 마코토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잘생겨서도 아니고 상냥해서도 아니고 그 풍부한 유머감각 때문도 아니고, 그냥 그라는 인간 자체에 관심이 간다, 고 일기에는 썼지만 지금 생각하면 완전 뻥이었다. 사실 나는 그가 잘생기고 상냥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해서 좋아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Thursday, September 23, 2010

"숫자 0이 숫자 8에게 뭐라고 그랬게?"

"벨트 좋은데."

어느 날 미란다에게 생긴 일

마지막 여운이 너무도 강렬해서 처음으로 돌아가 놓친 것들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Saturday, September 4, 2010

앤디워홀 이야기

* 팝아트?
팝아트는 소비사회와 대중문화의 이미저리와 기술들을 활용했던 20세기 예술운동이다. 1950년대 후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고, 1960년대와 1970년대가 전성기이다. 팝아트는 형상을 주로 하는 이미저리와 캠벨 수프 캔, 4단 만화, 광고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늘 보는 대상들을 재생한다. 이 운동은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을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이라고 구분을 짓던 경계선을 허물었다.

* 무언가 소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갖게 된다. 나는 이 명제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코카콜라 병을 예술의 세계로 끌어들이면서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선을 허물고 싶었다. 또한 특정 계층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예술의 세계를 열어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 나라 미국의 위대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같은 것을 소비하는 전통을 세웠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미국 대통령도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 뿐, 아무리 큰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모퉁이에서 건달이 빨아대고 있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유통되는 콜라는 모두 똑같다."

*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실크스크린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워홀은 예술을 일반 대중의 삶속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은 예술이 특별한 사람들만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깨뜨렸다.
"그림은 너무 딱딱하다. 난 기계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계는 문제가 적기 때문이다. 때로 나는 단순한 기계가 되고 싶은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 워홀은 다른 화가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일상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인 것을 소재로 택함으로써 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 수프 통조림 그림을 본 사람들은 워홀에게 "왜 슈퍼마켓에 가면 볼 수 있는 수프 통조림을 그립니까?" 또는 "대량생산이나 소비주의 혹은 광고에 대한 반발입니까?"라고 물었다. 워홀은 그 질문들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혼자 이렇게 속삭였다.
'내 그림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프 통조림을 그린 것입니다.'

* 워홀의 모든 예술 행위는 항상 새로운 것의 창조였다. 기존의 생각들을 깨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이것과 저것의 구분도 없애고, 예술이라는 영역 자체를 확대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앤디 워홀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Wednesday, September 1, 2010

그동안 얼마나 불만 가득한 삶을 살아왔던가. 일이 너무 많다고, 세금이 너무 많다고, 제약이 너무 많다고

젠장, 왜 그리 어리석었을까?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더 좋은게 어디 있을까? 살아 있기 때문에 슬픈 날도 기쁜 날도 있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닫게 되었을까? 왜 진작 그런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까?
'어이, 친구. 그런 걸 느낀 사람이 자네가 처음은 아니지. 다 죽음이란 문제와 연관되다 보니 그런 거야. 죽음이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할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버린 때일 거야.'